
우주에서 '가장 차가운 장소'가 지구 위 400km 궤도에 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요? 국제우주정거장(ISS)에 설치된 Cold Atom Laboratory(CAL)는 절대영도에 한없이 가까운 온도에서 원자를 다루며, 지상에서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실험 영역을 열어가고 있습니다. 대학원 시절 지상 실험실에서 비슷한 실험을 직접 해봤기 때문에, 이 프로젝트가 얼마나 대담한 도전인지 체감으로 압니다.
BEC란 무엇인가, 그리고 왜 만들기가 이렇게 어려운가
보스-아인슈타인 응축(BEC, Bose-Einstein Condensate)이라는 개념을 처음 들으면 생소하게 느껴지실 수 있습니다. BEC란 기체·액체·고체·플라스마에 이어 '제5의 물질 상태'로 불리는 것으로, 원자들이 극저온에서 에너지의 최저 상태로 일제히 수렴해 하나의 거대한 양자 파동처럼 행동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수백만 개의 원자가 각자의 개성을 잃고 하나의 입자처럼 움직이는 상태입니다. 이 상태에서는 양자 역학적 현상이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거시적 규모에서 나타나기 때문에 연구 가치가 매우 큽니다.
문제는 이걸 만들기가 지독하게 까다롭다는 점입니다. 저도 대학원 시절 광자기 트랩(MOT, Magneto-Optical Trap)을 이용해 루비듐($^{87}$Rb) 원자를 냉각하는 실험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MOT란 정밀하게 튜닝된 레이저 6방향과 자기장을 조합해 원자의 운동량을 상쇄시키고 특정 공간에 가두는 장치입니다. 도플러 냉각(Doppler cooling), 즉 레이저 빛의 도플러 효과를 이용해 원자의 속도를 줄이는 이 과정은 기술적으로 정밀한 광학 예술에 가깝습니다. 그렇게 혼신의 힘을 다해 수백 마이크로켈빈(μK) 근처까지 냉각시켜도, 결정적인 순간에 항상 같은 벽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중력이라는 물리적 한계, 지상 실험실의 적
BEC를 완성하고 관측하기 위해 자기장 트랩을 끄는 순간, 지구 중력($g = 9.8\ \mathrm{m/s^2}$)이 원자 구름을 챔버 바닥으로 끌어당겨 버립니다. 불과 수십 밀리초(ms) 만의 일입니다. 솔직히 이건 매번 경험해도 허탈했습니다. 몇 시간에 걸쳐 정렬하고 냉각한 원자 구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 버리니까요.
중력에 대항하기 위해 자기장을 강하게 유지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깁니다. 그 자기장 자체가 간섭 노이즈가 되어 순수한 양자 상태, 즉 결맞음(Coherence)을 파괴합니다. 결맞음이란 양자 입자들이 서로 위상을 맞추며 간섭 현상을 유지하는 성질로, 이것이 무너지면 BEC의 양자적 특성 자체가 소멸합니다. 지상에서 BEC 관측 시간은 길어야 수십~수백 밀리초 수준에 그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CAL이 선택한 해답은 근본부터 달랐습니다. 중력을 극복하는 대신, 중력이 없는 환경으로 아예 올라간 것입니다. ISS의 미세중력(micro-gravity) 환경, 즉 지구 중력의 영향이 극도로 작아져 자유낙하에 가까운 상태에서는 원자 구름이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CAL이 확보한 관측 시간은 지상의 밀리초 단위와 비교조차 어려운 수 초(Seconds) 단위입니다. 제가 지상에서 겪었던 좌절을 우주라는 환경 변수 하나로 단숨에 뒤집어버린 셈입니다.
CAL이 열어가는 양자 과학의 가능성
CAL은 2018년 5월 ISS로 발사되어 같은 해 설치를 완료했습니다. 지구 궤도 최초의 BEC 생성 기록을 세웠으며, 현재는 지구상의 여러 연구 그룹이 NASA 제트추진연구소(JPL)를 통해 원격으로 실험을 수행하고 있습니다(출처: NASA Science). 이 시설은 레이저 냉각 기술로 원자를 절대영도 근처, 구체적으로는 피코켈빈(pK) 영역까지 냉각할 수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습니다. 피코켈빈이란 절대영도보다 1조분의 1켈빈 높은 온도로, 우주에서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환경보다도 차갑습니다.
이 기술이 단순한 기초과학 실험으로만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원자 간섭계(Atom Interferometer), 즉 BEC 상태의 원자 파동이 나뉘었다 다시 합쳐지는 간섭 현상을 이용한 초정밀 측정 도구는 GPS가 닿지 않는 심우주 탐사선의 자율 내비게이션에 활용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한 암흑 물질 탐지를 위한 혁신적 센서의 핵심 기반이 될 수도 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많은 현대 기술의 토대인 반도체, 트랜지스터, 마이크로칩 역시 양자 현상을 응용한 결과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CAL이 열어가는 연구 영역의 파급력은 현재로서는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CAL의 과학적 성과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 지구 궤도 최초 BEC 생성 달성
• 지상 대비 수십 배 이상 연장된 양자 상태 관측 시간 확보
• 피코켈빈 수준의 극저온 달성으로 새로운 냉각 기술 기준 제시
• 원자 간섭계 기반 초정밀 센서 기술의 우주 검증
ISS라는 플랫폼의 한계, 그리고 다음 세대 미션
CAL을 전적으로 지지하면서도, 실험물리학 관점에서는 한 가지 구조적 문제를 짚고 싶습니다. ISS는 완벽한 무중력(Zero-G) 실험실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주인의 이동, 생명 유지 장치의 가동, 궤도 유지 기동 등으로 인해 끊임없이 미세 진동(Micro-jitter)이 발생합니다. 이 진동이 양자 상태의 결맞음을 파괴하는 노이즈로 작용한다는 것은 CAL 초기 운영 단계에서도 확인된 구조적 약점입니다. 제가 지상에서 광학 테이블 위에서 미세 진동과 싸웠던 것처럼, 우주에서도 진동 문제는 여전히 따라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시각이 나뉩니다. CAL은 어디까지나 훌륭한 개념 증명(Proof of Concept) 테스트베드이며, 현재 단계에서는 ISS라는 환경이 충분히 유효하다고 보는 분들도 있습니다. 반면 제가 보기에는, 아인슈타인의 등가 원리(Equivalence Principle) 검증처럼 극한의 정밀도가 필요한 실험을 위해서는 결국 인간이라는 가장 큰 진동원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플랫폼이 필요합니다. 등가 원리란 중력 질량과 관성 질량이 동일하다는 원리로, 이를 극한까지 검증하는 것은 현대 물리학의 핵심 과제 중 하나입니다.
유럽우주국(ESA)이 추진한 BECCAL 프로젝트나 향후 구상 중인 자유비행 양자 위성(Free-flying quantum satellite) 형태의 미션들이 이 방향을 실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ESA). 인간의 거주 공간으로부터 완전히 격리된 소형 독립 위성에서 BEC 실험을 수행하는 구조,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다음 세대 양자 우주 미션이 반드시 가야 할 방향입니다.
우주에서 양자 역학을 실험한다는 발상 자체가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공상에 가까웠습니다. CAL은 그 불가능해 보이던 첫 문을 열었고, 그 의미는 충분합니다. 다만 이 성과에 머무르지 않고 ISS의 구조적 한계를 넘어서는 다음 플랫폼을 설계하는 것이 연구 공동체의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양자 기술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향후 자유비행 양자 위성 미션의 동향을 함께 주목해 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science.nasa.gov/mission/cold-atom-laboratory/
https://www.esa.i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