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저는 식물이 빛을 향해 자란다는 사실을 그냥 교과서 속 이야기로만 여겼습니다. 그런데 직접 수경 재배기를 들여놓고 나서야 그게 얼마나 강렬한 본능인지 실감했습니다. 그 경험이 우주 식물 재배 연구를 다르게 보이게 만들었고, 지구 밖에서도 식물을 살릴 수 있는지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했습니다.
## 미세중력이라는 낯선 조건
몇 해 전, 햇빛이 잘 들지 않는 방에서 식물을 키워보겠다고 소형 수경 재배기를 들였습니다. 기기 위쪽에 달린 LED 조명에서 적색과 청색 파장이 뿜어져 나왔고, 덕분에 방 전체가 묘한 마젠타 핑크빛으로 물들었습니다. 처음엔 낯설었지만, 식물이 조명을 향해 고개를 꼿꼿이 드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이게 바로 우주 식물 재배의 핵심 전제와 맞닿아 있었습니다.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는 미세중력(Microgravity) 환경이 조성됩니다. 여기서 미세중력이란 중력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가 아니라, 중력의 영향이 극도로 작아져 물체가 지속적으로 자유낙하하는 것처럼 느끼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 환경에서는 식물이 '아래'가 어디인지 감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뿌리가 어느 방향으로 자라야 할지 혼란을 겪습니다.
지상에서도 식물은 흙 대신 LED 조명판을 향해 자랐습니다. 중력이 있는 환경에서도 빛이 더 강한 신호가 된다는 걸 제가 직접 확인한 셈입니다. 그래서 우주에서 빛으로 식물의 성장 방향을 유도한다는 발상이 저한테는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필연적인 해법으로 읽혔습니다.
또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미세중력 환경에서는 유체(Fluid)가 지구처럼 아래로 흘러내리지 않습니다. 물이 공기와 뒤섞이며 방울 형태로 뭉치기 때문에, 뿌리가 수분만 잔뜩 뒤집어쓰거나 반대로 공기에만 노출되는 상황이 생깁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NASA가 도입한 것이 '식물 베개(Plant Pillow)'입니다. 여기서 식물 베개란 점토 기반 배지와 비료를 담은 소형 주머니로, 물과 공기와 영양분이 뿌리 주변에 적절히 분산되도록 설계된 장치입니다.
제가 수경 재배기를 쓸 때 뿌리가 물속에 잠기면서 산소가 부족해지는 현상을 겪었던 기억이 납니다. 지구에서도 이 균형이 쉽지 않은데, 우주에서는 그 난도가 훨씬 높다는 게 실감 납니다.
## Veggie 시스템이 보여준 가능성
NASA의 Veggie 시스템은 ISS에 설치된 식물 재배 장치입니다. Veggie는 Vegetable Production System의 줄임말로, 기내용 캐리어 가방 정도의 크기에 최대 여섯 개의 식물을 동시에 재배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상추 세 종류, 청경채, 미즈나 머스타드, 적 러시안 케일, 그리고 백일초(Zinnia) 꽃까지 재배에 성공했습니다([출처: NASA](https://www.nasa.gov/exploration-research-and-technology/growing-plants-in-space/)).
광원으로는 발광다이오드, 즉 LED를 사용합니다. 여기서 LED(Light Emitting Diode)란 전기 에너지를 직접 빛으로 변환하는 반도체 소자로, 특정 파장만 선택적으로 출력할 수 있어 에너지 효율이 높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식물은 광합성 과정에서 초록빛을 대부분 반사하고 적색과 청색 파장을 주로 흡수하기 때문에, Veggie 챔버 안은 마젠타 핑크빛으로 가득합니다. 제 방에서 봤던 그 빛과 정확히 같은 이유였습니다.
Veggie에서 재배된 작물은 일부는 승무원이 직접 먹었고, 나머지는 지구로 가져와 오염 여부를 분석했습니다. 유해 미생물 오염이 발견되지 않았으며, 우주비행사들이 직접 맛을 보고 "맛있다"고 평가한 사례도 있습니다. 우주비행사 Serena Auñón-Chancellor는 2018년 추수감사절에 맞춰 적 러시안 케일과 드래곤 상추를 수확해 발사믹 식초와 함께 먹었다고 전했습니다.
심리적 효과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우주비행사 Scott Kelly는 백일초 꽃다발을 만들어 지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SNS에 공유했습니다. 제가 좁은 방 안에서 초록 잎이 하루가 다르게 돋아나는 걸 보며 느꼈던 안도감을 생각하면, 수만 킬로미터 떨어진 우주선 안에서 꽃을 피워낸 그 감정이 얼마나 컸을지 어렴풋이 짐작됩니다.
## 우주 농장으로 가는 길의 과제
Veggie가 보여준 성과는 분명히 인상적입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엔 지금 단계는 '우주 정원'이지, 아직 '우주 농장'이라고 부르기는 이릅니다. 수년이 걸리는 화성 왕복 탐사에서 동결건조 식품(Freeze-dried Food)에만 의존할 경우 치명적인 문제가 생깁니다. 동결건조 식품이란 식품의 수분을 진공 상태에서 얼려 제거하는 방식으로 보존 처리된 식품인데, 저장 기간이 길어질수록 비타민 C를 비롯한 필수 미량 영양소가 분해된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신선 채소 없이 수년을 버티면 과거 대항해 시대의 선원들처럼 괴혈병 같은 영양 결핍 질환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주 농장으로 나아가기 위해 어떤 과제가 남아 있을까요? 제가 보기에 핵심은 세 가지입니다.
- 규모 확장과 에너지 효율: 지금의 Veggie는 간식 수준의 생산량에 그칩니다. 칼로리를 공급할 수 있는 작물, 예를 들어 고구마나 감자처럼 탄수화물 밀도가 높은 식물을 대량으로 재배하려면 에너지 소모와 공간 점유 효율을 동시에 끌어올리는 배양액 순환 기술이 필요합니다.
- 폐쇄 생태계의 생물학적 안전성: 습도가 높은 재배 환경은 곰팡이나 세균이 번식하기 좋은 조건입니다. 지구에서는 천적이나 자연 환기가 어느 정도 이를 억제하지만, 밀폐된 우주선에서는 병해가 한번 발생하면 걷잡을 수 없이 번질 수 있습니다. 실시간 감지와 자동 방역 시스템이 재배 장치와 함께 개발되어야 합니다.
- 인간 중심의 조명 설계: 마젠타 핑크빛 LED 환경은 식물에게는 최적이지만, 장기간 그 빛 아래서 생활해야 하는 우주비행사에게는 스트레스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식물을 돌볼 때만이라도 자연광에 가까운 백색광을 제공하는 이중 조명 설계가 심리 치료 효과를 크게 높일 것으로 보입니다.
NASA는 토마토, 고추, 베리류 등 항산화 물질이 풍부한 작물을 다음 재배 대상으로 연구 중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특히 항산화 물질(Antioxidant)은 체내 활성산소를 중화해 세포 손상을 방지하는 성분으로, 우주 방사선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승무원에게 추가적인 방어막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출처: NASA Spinoff](https://spinoff.nasa.gov)).
우주에서 식물을 키우는 일은 결국 지구의 생태계를 작은 상자 안에 옮겨 담는 시도입니다. 그 상자가 완성될수록, 인류가 지구 없이 살아남을 수 있는 가능성도 한 발씩 가까워집니다. 지상의 수경 재배기 앞에서 뿌리를 들여다보며 느꼈던 경이로움이, 저를 이 주제에서 쉽게 떠나지 못하게 합니다. 화성으로 가는 우주선 안에 싱싱한 토마토 한 알이 열리는 날이 온다면, 그건 기술의 승리이기 이전에 생명에 대한 인류의 고집이 만들어낸 결과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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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https://www.nasa.gov/exploration-research-and-technology/growing-plants-in-space/